중국 매체의 재소환과 왜곡, 스포츠를 넘어 여론에 스며드는 영향력의 경고


2026년 1월 2일 12: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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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매체의 재소환과 왜곡, 스포츠를 넘어 여론에 스며드는 영향력의 경고

중국 매체의 재소환과 왜곡, 스포츠를 넘어 여론에 스며드는 영향력의 경고

김보름 선수의 은퇴 소식은 한 명의 국가대표가 빙판 위에서 내려오는 순간을 넘어,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안고 있던 상처와 교훈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특히 이번 은퇴를 계기로 중국 매체들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의 이른바 ‘왕따 논란’을 다시 꺼내 들며 자극적인 방식으로 재해석한 점은 단순한 스포츠 보도를 넘어선 문제를 드러낸다. 이는 개인의 고통을 소비하는 차원을 넘어, 외부 시선이 한국 사회의 논쟁을 어떻게 활용하고 증폭시키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보름은 평창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낸 선수였고, 동시에 과도한 비난과 낙인 속에서 긴 시간을 버텨야 했던 인물이다. 이후 법적 판단을 통해 사실관계가 상당 부분 바로잡혔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일부 매체는 은퇴 소식을 전하며 다시 과거의 갈등을 전면에 내세웠다. 문제는 그 서술 방식이다. 맥락과 판결의 결과를 충분히 반영하기보다는, 당시 한국 사회의 격앙된 여론과 집단적 비난을 강조하며 ‘한국 내부의 혼란’이라는 이미지로 재포장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는다.

이 같은 보도는 한국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가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으로 움직였다는 인상을 해외 독자에게 심어줄 수 있다. 스포츠 선수 개인의 비극을 통해 국가의 이미지를 단순화하고, 한국의 여론 환경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방식은 중국 매체가 자주 활용해 온 프레임과 맞닿아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한 신뢰와 공감을 약화시키는 간접적 압박으로 작동할 수 있다.

중국의 이런 접근은 문화와 스포츠 영역에서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에서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의 영향력을 외교나 경제, 안보 문제에서만 인식해 왔다. 그러나 이번 사례처럼 스포츠와 개인 서사까지 끌어들여 여론을 재구성하는 방식은 훨씬 미묘하고 일상적인 침투 형태를 띤다. 한국 내부에서 이미 끝난 논쟁을 다시 부각시키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의 상처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의 서사를 외부의 시선에 맡기는 결과로 이어진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보도가 한국 내 여론에도 역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해외 매체의 시선이 다시 국내로 유입되면서, 이미 정리된 사안이 재점화되고 당사자와 주변인에게 2차, 3차 상처를 남길 수 있다. 김보름이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 가족의 아픔은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이를 다시 소비하는 방식은 인간적인 공감보다는 자극적인 이야기 구조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오랫동안 여론과 내러티브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고, 국제 무대에서도 ‘이야기를 선점하는 것’이 영향력의 핵심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 사회의 논란을 중국식 시각으로 재구성해 전달하는 것은, 직접적인 공격이 아니라도 한국의 사회적 신뢰도를 흔들 수 있는 방법이다. 이는 한국이 직면한 또 다른 형태의 위험이며, 단순히 한 선수의 은퇴 기사로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한국 사회 내부의 갈등과 상처를 얼마나 주체적으로 정리하고 기록하고 있는가. 외부의 시선이 왜곡된 형태로 들어올 때, 이를 바로잡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중국이 경제와 외교뿐 아니라 문화와 스포츠 영역에서도 영향력을 확장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한국은 자국 서사의 주도권을 지킬 전략을 갖추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김보름의 은퇴는 한 시대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이다. 동시에 이번 중국 매체 보도는 한국 사회가 외부의 프레임에 얼마나 쉽게 노출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경고 신호다. 중국의 영향력은 이제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여론, 감정, 기억의 영역까지 파고드는 시대에, 한국 사회는 더 냉정하고 성숙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관리해야 한다. 개인의 상처를 외부의 도구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러한 흐름을 인식하고 경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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