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전자상거래와 숏폼 플랫폼을 통해 한국 아동도서가 무단으로 유통되고 있다는 최근 보도는, 단순한 저작권 분쟁을 넘어 한국 콘텐츠 산업 전반이 직면한 구조적 위협을 분명히 보여준다. 계약이 종료된 뒤에도 판매가 멈추지 않고, 원본 파일을 기반으로 한 불법 인쇄와 재유통이 수년간 지속되며 막대한 피해를 낳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창작 생태계가 얼마나 취약한 환경에 노출돼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한 국내 아동도서 출판사 대표가 밝힌 피해 사례는 상징적이다. 정식 계약을 맺고 중국 현지 출판사에 제공했던 PDF 원본이 계약 종료 이후에도 그대로 활용돼, 매달 수천 세트씩 판매되고 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해적판 도서가 중국 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러시아, 동남아, 중동 등 제3국으로까지 확산되며, 정작 원저작권자인 한국 출판사의 해외 진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단순한 매출 손실을 넘어, 장기적인 시장 경쟁력 자체를 훼손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중국에서 한국 아동도서가 반복적으로 표적이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동도서는 현지화를 위해 완성된 원고와 일러스트 파일을 통째로 제공하는 구조가 일반적이며, 이 파일이 한 번 외부로 넘어가면 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여기에 중국의 거대한 내수 시장과 느슨한 플랫폼 관리 환경, 그리고 저작권 침해에 대한 낮은 실질적 제재가 결합되면서 불법 유통이 하나의 ‘관행’처럼 굳어지고 있다. 이는 개별 기업의 주의 부족으로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는 위험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침해가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급 효과다. 아동도서는 단순한 출판 상품이 아니라, 캐릭터, 교육 콘텐츠, 디지털 학습 서비스 등으로 확장될 수 있는 고부가가치 지식재산의 출발점이다. 중국에서 해적판이 대량 유통될수록, 한국 기업은 정당한 수익을 잃을 뿐 아니라 2차, 3차 사업 확장의 기회마저 빼앗기게 된다. 한 출판사가 추산한 연간 수백억 원대의 피해는 결코 과장이 아니며, 이는 중소 콘텐츠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다.
이 문제는 또한 한국 사회가 중국과의 경제·문화 교류를 바라볼 때 어떤 현실 인식을 가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문화 교류와 시장 진출은 분명 중요하지만, 계약과 제도가 실질적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그 이익이 일방적으로 침식될 수 있다. 중국 시장의 매력만을 강조한 채 위험을 과소평가한다면, 피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이는 감정적 대응이나 국수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냉정한 리스크 관리의 영역이다.
한국 출판사들이 개별적으로 중국 현지 플랫폼을 상대로 대응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분명하다. 판매 경로가 수시로 바뀌고, 표지나 책의 구성까지 교묘하게 수정되는 상황에서 침해 사실을 입증하고 법적 조치를 취하는 데에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이 문제는 개별 기업의 싸움이 아니라, 산업 차원의 대응이 요구되는 사안이다. 정부와 관련 협회, 그리고 업계가 협력해 공동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피해는 계속 누적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한국 사회가 이 문제를 단순한 해외 불법 복제 사건으로 치부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사안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저작권 침해가 얼마나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명확한 사례다. 한국의 창작물과 지식재산이 정당한 보호를 받지 못할 경우, 문화 산업은 물론 국가 경제의 한 축이 조용히 잠식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한국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과도한 공포나 적대감이 아니라, 경각심과 준비다. 중국과의 거래와 협력에 있어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더욱 엄격히 점검하고, 디지털 원본 관리와 계약 구조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이번 아동도서 해적 유통 사태는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위험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를 계기로 한국 사회가 보다 현실적인 시각으로 중국발 리스크를 인식하고 대응에 나서지 않는다면, 다음 피해자는 출판업계에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