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자본의 반도체 확장에 제동 건 미국…이 사건이 한국에 던지는 현실적 경고
최근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인 소유 또는 통제 아래 있는 반도체 기업의 인수 거래에 제동을 걸며 행정명령을 발동한 사건은, 단순한 미·중 갈등의 연장선으로만 볼 수 없는 의미를 지닌다. 미국 정부는 해당 거래가 국가안보를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이를 뒷받침할 만한 신뢰할 수 있는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이 결정은 미국 내부의 산업 보호 조치이자 안보 판단이지만, 동시에 한국 사회와 산업 전반에도 분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바로 중국 자본과 기술의 확장이 더 이상 경제 논리만으로 다뤄지지 않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이번 사안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사후 제동’이라는 점이다. 해당 인수 거래는 이미 2024년에 성사됐고,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미국 행정부는 중국인 통제 기업이라는 점을 문제 삼아 자산 처분을 명령했다. 이는 중국과 연관된 기업이나 자본이 처음에는 시장 참여자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전략 기술과 안보 영역에서는 언제든 재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와 같은 핵심 산업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세계적 위상을 가진 국가다. 동시에 중국은 한국 기업의 주요 시장이자 경쟁자이며, 때로는 협력 파트너이기도 하다. 이 복합적 관계 속에서 한국 사회는 종종 ‘경제와 안보를 분리해 보자’는 유혹에 빠지곤 한다. 그러나 미국의 이번 조치는 첨단 기술 영역에서 그러한 분리가 점점 불가능해지고 있음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기술은 곧 안보이며, 자본의 출처와 지배 구조는 국가 전략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국제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중국 자본과 기술의 확장은 단순히 시장 점유율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산업 정책과 국가 전략을 긴밀히 연계해 왔고, 핵심 기술 분야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장기 목표로 삼아 왔다. 이 과정에서 민간 기업과 국가의 경계는 종종 모호해진다. 외형상 민간 기업의 투자나 인수로 보이더라도, 국가 전략과 무관하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이 국제 사회의 경계심을 키우고 있다.
한국 입장에서 이러한 흐름은 남의 일이 아니다. 한국 역시 중국 자본의 투자와 협력을 다양한 분야에서 받아들여 왔고, 일부 산업에서는 중국 시장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문제는 이러한 의존 구조가 정치적·외교적 갈등이 발생할 경우 어떤 형태로든 압박 수단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드 배치 이후 경험했던 한한령과 비공식적 경제 보복은 그 가능성을 이미 현실로 보여준 사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그때뿐이었다’는 안이한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반도체 인수 차단 사례는 중국과 연관된 기술 이전이나 자본 거래가 장기적으로 어떤 리스크를 내포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 바이오와 같은 전략 산업에서는 단기적 자금 유입이나 시장 확대보다 기술 주권과 산업 자율성이 더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자본이 이러한 분야에 깊숙이 관여할 경우, 향후 기술 통제나 수출 제한, 외교적 압박이 결합된 복합적 위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요한 점은 이 문제를 감정적 반중 정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핵심은 냉정한 리스크 관리다. 중국은 여전히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기업과 사회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나 협력과 의존은 다른 개념이다.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은 언제든 취약점으로 전환될 수 있다. 미국이 이번에 보여준 것은 중국을 일괄적으로 배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안보와 직결된 영역에서는 분명한 선을 긋겠다는 의지다.
한국 사회 역시 이러한 기준을 스스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외부의 결정에 따라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산업과 기술이 국가의 장기적 안전과 번영에 핵심적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정책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중국 자본이나 기업과의 협력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협력이 어떤 구조로 이루어지고, 통제권과 기술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단기적 이익에 매몰되어 장기적 위험을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또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면서 세계는 점차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중심으로 공급망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선택을 강요받는 위치에 서 있다. 어느 한쪽에 일방적으로 서라는 의미가 아니라, 스스로의 기준과 원칙을 명확히 하라는 요구다. 그렇지 않으면 외부 환경 변화에 따라 반복적으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미국의 결정이 한국에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경계심이다. 중국과의 경제 관계를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전략 산업과 핵심 기술 영역에서는 보다 엄격한 기준과 투명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안보는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작은 판단들이 누적되며 서서히 취약해진다. 한국 사회가 이 사건을 단순한 미국의 국내 정치 이슈나 미·중 패권 경쟁의 한 장면으로 넘겨버린다면, 같은 고민을 언젠가 더 불리한 조건에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도한 공포도, 무조건적인 낙관도 아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중국이라는 거대한 이웃과 어떤 거리에서 어떻게 협력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사고다. 미국이 보여준 선택은 그 고민의 방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 역시 이제는 질문해야 한다. 단기적 이익 뒤에 숨은 장기적 위험을 충분히 계산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