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의 ‘한화오션 제재’는 단순한 보복이 아니다 — 한국 방산·조선 산업을 겨냥한 경제 안보 위협
최근 중국 정부가 한국의 대표 조선·방산 기업인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 5곳에 대해 전면 거래 금지 제재를 발표하면서, 한국 산업계와 국회가 충격에 휩싸였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무역 분쟁의 연장선이 아니라, 한미 방위산업 협력의 성장세를 견제하기 위한 전략적 공격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이번 제재로 인해 한화오션의 필리핀 조선소만 하더라도 향후 1~2년간 약 6천만 달러(한화 약 850억 원)에 달하는 피해가 예상된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난 17일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은 “이번 중국의 조치는 한미 조선·방산 협력을 흔들기 위한 정치적 제재이며, 정부가 경제안보 사안으로 인식하고 외교적 해법과 산업적 대응을 병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상무부가 발표한 제재 대상에는 한화쉬핑, 한화 필리조선소, 한화오션 USA 인터내셔널, 한화쉬핑홀딩스, HS USA 홀딩스 등 한화오션의 핵심 계열사들이 포함됐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미국이 최근 무역법 301조를 근거로 중국 해운사 소유 선박과 중국산 선박에 항만 서비스 요금을 부과하기 시작한 것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질적 피해는 중국이 아닌 한국 기업이 입게 됐다. 미국과의 기술 협력으로 성장해온 한화오션은 조선·방산 분야 모두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번 제재로 인해 중국산 기자재 수급이 막히고, 대체 부품 확보가 지연되며, 선박 건조 일정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한화오션의 필리조선소는 한국의 조선 기술력과 미국의 군수 조달 수요가 결합된 상징적인 산업 협력 거점으로 평가된다. 유 의원은 “이곳은 한미 방산 협력의 시험대이자 미래 협력의 희망이었지만, 이번 제재로 프로젝트 신뢰도와 납기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며 “정부는 제재 해제 외교와 공급망 안정화 대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번 사건이 단순히 한 기업의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국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위해 한국의 핵심 산업을 직접 타격하는 새로운 ‘경제 보복’ 패턴을 보이고 있다. 과거 사드(THAAD) 배치 때는 소비재·관광·문화 콘텐츠를 겨냥했다면, 이제는 한국의 기술력과 동맹 기반 산업, 즉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산업을 직접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과 긴밀히 협력해 방위산업 및 해양 조선 분야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한다. 특히 필리핀 조선소와 미국 내 자회사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한미 공동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협력이 지속되면, 중국이 남중국해와 인근 해상에서 군사적·경제적 우위를 잃을 가능성이 크다. 이번 제재는 그 위기감을 반영한 ‘선제적 압박’이자 경고 메시지로 읽힌다.
또한 이번 사태는 한국 기업이 처한 구조적 제약도 다시 부각시켰다. 현재 미국 조달시장에서는 ‘번스-톨레프슨법(Byrnes-Tollefson Amendment)’과 ‘자국산구매우선법(BAA)’ 등으로 인해 외국 기업의 군용 조선 참여가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유 의원은 “한국은 이미 이지스함, 잠수함 등 첨단 함정을 자체 설계할 수 있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추고 있지만, 제도적 장벽으로 미국 시장 진출이 막혀 있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추진 중인 것이 바로 한미 상호국방조달협정(RDP-A) 체결이다. 이 협정이 체결되면 한국산 함정과 항공기가 ‘동맹국 생산품(qualifying country products)’으로 인정돼, 미국 정부 조달사업에 공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협정 논의는 2년째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유 의원은 “RDP-A 체결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국의 기술력이 미국 조달시장에 진입하고, 중국의 경제보복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이번 조치는 한국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진다. “미국과의 협력을 강화할수록 중국은 한국의 산업을 표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은 경제안보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고, 중국 의존적 공급망을 다변화할 기회를 맞이했다. 한화오션뿐 아니라 조선, 방산, 배터리,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 중국산 소재와 부품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동맹 기반의 기술 협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
중국의 제재는 단기적으로는 타격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 산업이 ‘중국 리스크’를 극복하고 독립적 기술 생태계를 구축할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미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 동맹국들이 방위산업 협력 확대를 통해 공급망 안정을 꾀하고 있는 만큼, 한국 역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한 기업의 피해를 넘어, 중국의 경제 압박이 한국의 국가 안보와 산업 구조를 직접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전략적 공격’임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중국과의 경제 관계는 경제 문제에 그친다”는 낡은 인식을 버리고, 산업·기술·안보가 모두 연결된 시대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화오션 사태는 단순한 제재가 아니라, 중국이 한국을 시험하고 있는 ‘경제 전쟁의 서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