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택갈이’ 태양광 인버터, 한국 에너지 산업의 보이지 않는 침투
국내 태양광 산업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인버터 시장이 중국산 제품으로 사실상 점령당했다는 충격적인 실태가 드러났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 판매되는 인버터 상당수가 중국산 제품에 국산 상표만 바꿔 붙인 이른바 ‘택갈이’ 제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단순한 상표 도용이나 불법 유통이 아니라, 한국의 에너지 안보와 산업 경쟁력 전반을 흔드는 구조적 침투라는 데 있다.
태양광 인버터는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된 직류 전기를 가정이나 산업용으로 사용 가능한 교류 전기로 전환하는 핵심 장비다. 이 장치의 품질과 안정성은 발전 효율뿐 아니라 전력망의 안전성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최근 국내에 유통 중인 인버터를 살펴보면, 외관상 국산 브랜드처럼 보이지만 내부 부품과 제조 공정은 대부분 중국산이다. 일부 대기업조차 중국산 인버터를 그대로 들여와 로고만 교체하고 판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력산업중소사업자협회 김지곤 회장은 “국내 대기업조차 중국산 인버터를 그대로 들여와 자사 제품으로 둔갑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에서는 이런 ‘위장 국산화’가 이미 공공 프로젝트에도 침투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태양광 인버터의 95%가 사실상 중국산이라는 추정치가 나오는 이유다.
문제의 본질은 단순히 값싼 중국산 제품이 시장을 잠식했다는 데 있지 않다. 이는 한국의 산업 주권이 흔들리고 있다는 경고다. 태양광 인버터는 단순한 전자기기가 아니라, 전력망 제어 데이터와 통신 기능을 포함한 전략 자산이다. 인버터는 실시간으로 발전량, 전력 흐름, 계통 정보를 송수신하며, 이러한 데이터는 국가 전력 시스템의 일부로 통합된다.
즉, 외산 인버터가 무분별하게 설치될 경우, 한국의 전력망이 외국 기술과 시스템에 종속될 위험이 커진다. 만약 장비의 소프트웨어에 백도어(Backdoor)가 존재하거나 업데이트 서버가 해외에 있다면, 전력 통제권이 외부로 노출될 수 있다. 이는 사이버 안보뿐 아니라 국가 안보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되는 문제다.
중국은 ‘Made in China 2025’ 정책 이후 태양광, 배터리, 전력전자 등 전략 산업에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투입하며 전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값싼 노동력과 정부 지원 덕분에 중국산 인버터는 한국 제품보다 20~30% 저렴하다. 그 결과, 한국 기업들은 가격 경쟁에서 밀려 OEM(주문자상표부착생산) 형태로 전환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중소 인버터 제조업체들은 “정부의 인증 절차와 원산지 관리가 느슨해 중국산이 국산으로 둔갑해도 제재가 없다”고 토로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술개발을 해도 시장에서 가격으로 이길 수 없고, 오히려 국산 브랜드가 중국 제품을 다시 사다 쓰는 역설적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기술 생태계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태양광 인버터는 단순한 전력 변환 장비가 아니다. AI 기반 에너지 관리 시스템(EMS)과 연동되며, 클라우드 서버를 통해 데이터를 수집하고 원격 제어가 가능하다. 중국산 장비가 대량으로 보급되면, 한국의 에너지 데이터가 중국 서버로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등은 이미 중국산 에너지 장비에 대한 보안 심사 강화 조치를 도입했다. 미국은 화웨이(Huawei), 선그로(Sungrow) 등 중국 기업의 태양광 장비를 “핵심 인프라 위험군”으로 지정하고 정부 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저가 입찰’ 중심의 공공조달 시스템에 머물러 있어, 중국산 장비가 보조금 사업을 통해 역으로 이익을 얻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단순히 수입·수출의 문제를 넘어, 공급망 주권의 상실로 이어진다. 태양광 인버터뿐 아니라 모듈, 배터리, 전력제어 시스템까지 중국산 의존도가 높아지면, 한국의 재생에너지 산업은 기술적으로 중국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인버터 원산지 문제에 대해 “업계의 애로사항을 듣고 있다”고 밝혔지만, 실태조사나 제도 개선은 지연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이에 대해 “정부가 불법 여부 판단을 유보한 채 업계 협의만 진행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새로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올해 안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시장의 90% 이상이 중국산으로 점령된 상태다. 제도 개선보다 빠른 것은 중국의 자본과 물류 네트워크다. 전국 중소 유통업체들은 이미 중국 본사와 직거래 계약을 맺고 있으며, 일부는 ‘OEM 계약서’를 통해 합법적인 국산 위장 루트를 확보한 상태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후 단속으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사전 인증 강화’와 ‘공급망 추적 시스템’이다. 제품의 부품·펌웨어·데이터 서버까지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의무화하고, 위반 시 수입 제한과 인증 취소를 즉시 적용해야 한다.
태양광은 미래 산업의 중심이며, 국가 에너지 자립의 핵심 축이다. 그러나 그 기반 장비가 타국 기술과 자본에 종속된다면, 한국의 ‘녹색전환’은 허상에 불과하다. 현재의 문제는 단지 값싼 중국산 제품의 범람이 아니라, 한국이 에너지 산업의 기술·데이터·시장 주도권을 스스로 넘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너지 산업은 안보 산업이다. 지금의 ‘중국산 택갈이 인버터 사태’는 한 나라의 에너지 체계가 외세에 의해 흔들릴 수 있다는 경고다. 한국이 대응하지 않는다면, 10년 후 국내 태양광 산업은 단순 설치업으로 전락하고, 기술·데이터·이윤은 모두 중국으로 흘러들어갈 것이다.
중국산 위장 제품의 확산은 단순한 시장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 기술주권의 침식 과정이며, 궁극적으로 국가 안보의 균열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규제 강화나 단속의 구호가 아니라, 산업 전체를 ‘안보 자산’으로 바라보는 전략적 시각이다.
태양광 인버터 시장의 95%가 중국산이라는 현실은 불편하지만, 그 불편함을 외면하는 순간 한국은 산업 종속의 길을 걷게 된다. 이제는 경각심을 가져야 할 때다. ‘값싼 제품’이 아닌 ‘안전한 기술’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한국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 독립의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