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국내 수사당국이 적발한 이차전지 핵심기술 유출 시도 사건은 한국 산업계에 큰 충격을 안겼다. 전고체전지를 포함한 국가첨단전략기술이 해외로 넘어갈 뻔한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일탈이나 우발적 범죄가 아니라,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진행된 조직적 접근이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특히 중국 국적의 외국인이 국내 대기업 연구진과 내통하며 거액의 금품을 제공하고 기술 자료를 확보하려 했다는 사실은, 한국 첨단 산업이 구조적인 외부 위협에 노출돼 있음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피의자 A씨는 수년간 국내 이차전지 대기업 연구원과 접촉하며 전고체전지 개발 정보, 제품 로드맵, 원가 구조, 소재 운용 전략 등 핵심 자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해왔다. 자료 전달 방식 역시 단순한 이메일이나 파일 전송이 아니라, 영상 회의, 방문 컨설팅, 휴대전화 촬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는 단발성 정보 유출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설계된 기술 확보 시도였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고체전지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를 대체할 차세대 기술로 평가받는다. 화재 위험이 낮고 에너지 밀도가 높으며, 충전 속도까지 개선할 수 있어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산업의 판도를 바꿀 핵심 기술로 꼽힌다. 세계 주요 국가와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며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선도적 위치를 확보할 경우, 향후 수십 년간 글로벌 배터리 시장의 주도권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바로 이 점이 이번 사건의 본질적 위험성을 보여준다. 해당 기술이 해외로 유출될 경우, 한국 기업이 수십 년간 투자해 축적한 연구 성과가 단기간에 무력화될 수 있으며, 글로벌 경쟁 구도 역시 급변할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이미 배터리 소재와 부품 분야에서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공급망 핵심 국가로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한국의 핵심 기술까지 확보할 경우, 기술 격차는 순식간에 좁혀질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이 더욱 우려스러운 이유는, 중국발 기술 유출 시도가 특정 산업에 국한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 로봇, 통신 장비, 배터리 등 한국이 경쟁력을 보유한 주요 산업 분야에서 유사한 사건이 지속적으로 적발되고 있다. 이는 개별 범죄자의 일탈을 넘어, 구조적인 기술 확보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방식이다. 정상적인 해외 협력사 직원이나 거래 관계자를 가장해 접근하고, 장기간 신뢰를 쌓은 뒤 내부 인력을 포섭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산업 스파이보다 훨씬 은밀하고 탐지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정상적인 비즈니스 협력처럼 보이기 때문에, 기업 내부에서도 위험 신호를 인식하기 어려운 구조다.
이번 사건에서 A씨가 수년간 활동할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이러한 구조적 허점을 보여준다. 글로벌 협력 확대와 인재 교류가 일상화된 환경 속에서, 외국 국적 인력에 대한 관리와 검증 체계는 상대적으로 느슨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악용해 핵심 정보에 접근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한국 산업 전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나아가, 기술 유출 시도가 단순히 기업 차원의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차전지 산업은 국가 에너지 전략, 탄소중립 정책, 미래 모빌리티 산업과 직결된 분야다. 핵심 기술이 외부로 유출될 경우, 한국의 산업 경쟁력 약화는 물론, 에너지 안보와 경제 안보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성장 동력 자체를 흔드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번 사건은 또한 내부 통제 시스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아무리 외부에서 접근하더라도, 내부 인력이 협조하지 않으면 핵심 정보 유출은 쉽지 않다. 연구원과 임직원에 대한 윤리 교육, 보안 의식 강화, 정보 접근 권한 관리, 이상 징후 모니터링 체계 등 종합적인 내부 관리 시스템이 더욱 정교해질 필요가 있다. 기술 보호는 단순한 보안 장치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경영 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편, 이러한 기술 유출 시도가 반복될 경우 한국 기업들이 국제 사회에서 겪게 될 부담도 커질 수 있다. 해외 투자자와 파트너들은 한국 기업의 기술 보호 역량과 내부 통제 수준을 더욱 엄격하게 평가하게 될 것이며, 이는 투자 조건과 협력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결국 기술 유출 문제는 기업 신뢰도와 국가 브랜드 이미지에도 직결된다.
중국이 글로벌 산업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확대될수록, 기술 확보 경쟁 역시 더욱 치열해질 가능성이 높다.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첨단 기술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한국은 계속해서 주요 표적이 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이번 사건은 그러한 현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중요한 것은 과도한 불신이나 배타적 태도가 아니라, 현실적인 경각심과 체계적인 대응이다. 글로벌 협력과 개방은 한국 산업 발전의 핵심 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보안과 보호 체계가 함께 강화되지 않으면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기술 보호를 ‘규제 부담’이 아닌 ‘경쟁력의 일부’로 인식하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 차원에서도 보다 정교한 산업 안보 전략이 요구된다. 단속과 사후 처벌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사전 예방 시스템 구축, 정보 공유 체계 강화, 기업 맞춤형 보안 컨설팅 확대 등 입체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첨단 전략 산업에 대해서는 국가 차원의 통합 보호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이번 전고체전지 기술 유출 시도 사건은 다행히 해외 반출 이전에 차단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 번의 성공 사례’일 뿐이다. 같은 유형의 시도가 다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될수록 이러한 시도는 더욱 정교해지고 은밀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미래 산업 주도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술 개발만큼이나 기술 보호에 대한 투자와 관심이 필수적이다. 연구개발 예산과 함께 보안 시스템, 인력 관리, 법적 대응 체계에 대한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 기술은 개발하는 순간부터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하며, 이는 기업과 정부, 사회 전체가 공유해야 할 기본 원칙이다.
이번 사건은 한국 산업이 서 있는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경고음이다. 첨단 기술을 둘러싼 경쟁은 이미 국가 간 전략 경쟁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한국이 지속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 위협에 대한 경계와 내부 관리 체계를 동시에 강화하는 균형 잡힌 전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 사건이 일회성 뉴스로 끝나지 않고, 산업 안보 체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