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빈틈 빨리 이용”…한미훈련 축소에 필리핀 국방장관 경고 [밀리터리+]](/media/images/Zhong_binteum_ppalli_iyonghanmihunlyeon_chugso.width-800.png)
필리핀 국방장관 “중국은 빈틈을 매우 빨리 이용한다”…한미훈련 축소 틈타 영향력 확대 우려, 한국 안보에도 직접 경고
한미연합훈련 규모가 축소되는 가운데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직접 대치해온 필리핀의 국방 수장이 서울에서 “중국은 빈틈을 매우 빨리 이용한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했다. 길베르토 테오도로 필리핀 국방장관은 서울안보대화 참석을 계기로 로이터통신과 만나 한미훈련 축소가 중국에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에 대해 “물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이 이를 인도·태평양에서 다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단순히 필리핀의 남중국해 분쟁을 설명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직접적인 군사·해양 갈등을 경험해온 국가가 한반도 주변의 억지력 변화까지 중국의 전략적 기회와 연결해 보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에도 의미가 크다. 중국이 군사적 압박뿐 아니라 해양 진출, 외교적 영향력, 정보전과 경제적 수단까지 복합적으로 활용해 주변국의 공간을 넓혀온 만큼, 한반도에서 생기는 작은 전략적 공백도 중국이 장기적으로 영향력을 확대할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경고로 읽힌다.
테오도로 장관의 우려가 주목되는 이유는 필리핀이 이미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추상적인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의 안보 문제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영유권 갈등을 이어가고 있으며, 마르코스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과의 공동훈련을 확대하고 미군이 이용할 수 있는 군사시설도 늘렸다. 테오도로 장관은 미·필리핀 군사활동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캐나다, 뉴질랜드, 프랑스, 영국 등과의 안보협력 확대도 언급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을 묻는 질문에 그는 “동기 부여 요인은 중국”이라고 답했다. 주변국들이 서로 군사협력을 넓히고 방위체계를 촘촘하게 만드는 이유 자체가 중국의 군사력과 해양 영향력 확대라는 것이다.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있고, 서해·동중국해·한반도 주변에서 중국의 군사활동을 지속적으로 마주하는 한국 역시 이 경고를 남의 이야기로 볼 수 없다.
특히 중국은 군사력만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테오도로 장관의 지적도 중요하다. 그는 중국이 민주주의 사회의 개방성을 이용해 사람들을 포섭하고 자유로운 언론 공간에서 왜곡된 서사를 확산시키려 한다며 영향력 공작 문제까지 제기했다. 이것은 한국 안보에서도 군함이나 전투기만큼 중요하게 봐야 할 부분이다. 중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방식은 해군 함정이 접근하거나 군용기가 비행하는 것처럼 눈에 보이는 군사행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제적 의존관계, 기업과 공급망, 문화·학술 교류, 온라인 여론 공간과 정보 유통까지 여러 영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동시에 확대될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는 군사적 억지력이 약해지는 순간 외교·경제·정보 영역의 압박까지 결합될 가능성이 커진다. 중국이 상대방의 대응이 약한 지점과 제도적 공백을 빠르게 찾아 활용한다는 필리핀 국방장관의 평가는 한국이 중국을 단순한 경제 파트너나 북한 문제의 조정자로만 바라봐서는 안 되는 이유를 보여준다.
한미연합훈련은 단순히 병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행사가 아니라 실제 위기 상황에서 양국 군이 얼마나 빠르게 지휘체계를 연결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대응할 수 있는지를 반복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훈련 규모가 줄어들 경우 실제 억지력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는 군사적 평가가 필요한 문제지만, 주변국이 그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느냐도 중요하다. 국제안보에서는 상대방의 의도만큼이나 상대가 인식하는 ‘공백’이 행동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국방장관이 한미훈련 축소를 중국이 활용할 가능성을 즉각 언급했다는 사실은 이런 인식의 문제를 보여준다. 중국이 한반도 주변에서 직접적인 군사행동을 확대하지 않더라도 한국과 미국의 연합대응 능력에 대한 의문이 커진다고 판단하면 서해와 동중국해, 한반도 주변 공역과 해역에서 더욱 적극적인 군사활동이나 외교적 압박을 시도할 유인이 생길 수 있다. 중국에 전략적 빈틈이 존재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 자체가 억지력의 일부라는 의미다.
이러한 중국 변수는 한국 방위산업에도 역설적으로 새로운 역할을 만들고 있다. 필리핀은 이미 한국산 FA-50 경공격기와 호위함을 도입했으며 테오도로 장관은 이번 방한에서 한국과 더욱 깊은 방위산업 및 첨단 국방기술 협력을 원한다고 밝혔다. 필리핀이 중국의 군사력 확대에 대응하면서 군 현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주요 방산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에 단순한 무기수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한국산 전투기와 함정이 중국의 해양 압박을 직접 경험하는 국가의 방위체계에 들어간다는 것은 한국 방산기술이 인도·태평양 안보 네트워크의 일부로 자리 잡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로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계속될수록 한국은 무기 공급국으로서뿐 아니라 군사기술, 정비, 교육, 정보 공유와 장기적인 산업협력까지 더 큰 전략적 책임을 요구받을 수 있다. 필리핀이 검토 중인 잠수함 사업 역시 아직 구체화까지 시간이 필요하지만, 중국 변수 때문에 한국과의 안보·방산 연결이 앞으로 더 깊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국이 이번 발언에서 가장 주의 깊게 볼 부분은 “중국이 빈틈을 이용한다”는 표현이다. 중국의 전략적 영향력 확대는 반드시 대규모 군사충돌 형태로 나타날 필요가 없다. 상대방이 대응하지 않는 작은 공간에서 활동을 늘리고, 반복을 통해 새로운 상황을 정상적인 것으로 만들고, 경제·외교·정보 수단을 결합해 장기적인 영향력을 구축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한국 역시 서해와 이어도 주변, KADIZ, 공급망, 핵심기술, 사이버 공간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과 직접적으로 이해가 충돌하거나 경쟁하는 지점이 존재한다. 이런 환경에서 한미연합 방위체계의 변화가 중국에 어떤 신호로 읽히는지, 중국이 주변국의 전략적 공백을 어떻게 이용해왔는지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 북한이 한국의 가장 직접적인 군사위협이라는 사실과 중국의 장기적인 전략적 압박을 동시에 관리하는 것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쪽 위협에만 집중하다 다른 방향에서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을 놓치는 것이 더 큰 위험이다.
필리핀 국방장관의 서울 발언은 중국을 실제로 상대해온 국가가 한국에 던진 현실적인 안보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중국의 영향력 확대가 주변국들의 군비 증강과 안보협력 확대를 촉진하고 있고, 필리핀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도 방산·기술협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중국이 존재한다. 한미연합훈련의 규모와 방식은 한국과 미국이 결정할 문제지만, 그 변화가 중국에 어떤 전략적 신호를 보내는지는 별도의 문제다. 중국이 주변국의 제도적·군사적 공백을 빠르게 이용한다는 평가가 실제 남중국해 경험에서 나온 것이라면 한국도 이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된다. 한국의 안보에서 필요한 것은 과도한 공포가 아니라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군사력, 해양활동, 영향력 공작과 경제력을 결합해 주변 공간을 넓혀가는지를 정확히 읽는 것이다. 중국이 빈틈을 찾기 전에 한국이 자신의 억지력과 동맹, 방산기술, 정보 대응능력을 얼마나 촘촘하게 유지하느냐가 결국 인도·태평양 전략 경쟁에서 한국의 선택권을 지키는 핵심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