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공안과 같은 경찰공화국” 경고 나온 한국 형사사법 개편…중공식 수사권 독점이 시민 자유를 위협하는 이유
검사의 보완수사권과 직접수사 권한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한국 형사사법체계가 70여 년 만에 중대한 전환점을 맞게 됐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검찰청은 폐지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이 출범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유승민 전 의원은 한국이 “중국 공안과 똑같은 경찰공화국”으로 변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번 논쟁의 핵심은 특정 정치인의 표현이 과격한지 여부가 아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수사권이 어떤 기관에 집중되고, 그 기관의 잘못된 판단을 누가 다시 검토하며, 억울한 시민이 어디에 재수사를 요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권력기관 개혁은 기관의 이름을 바꾸는 작업이 아니라 권력 사이에 견제와 책임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사라지면 경찰 수사에서 누락되거나 충분히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검사가 직접 보완할 수 있는 통로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고 검사는 기소 여부만 판단하는 구조가 강화될 경우, 최초 수사기관의 판단이 사건 전체의 방향을 사실상 결정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경찰이 모든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수의 경찰관은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현장에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기관이든 오류와 편견, 조직적 이해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민주주의 제도가 중요한 이유는 공직자의 선의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이 실수하거나 권력을 남용해도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다.
중국 공산당 체제의 가장 위험한 특징도 바로 이런 견제 장치가 약하다는 데 있다. 중국의 공안기관과 국가안전기관은 당의 정치적 목표에 종속돼 있으며, 수사와 감시, 체포가 독립적인 사법통제보다 공산당의 체제안정을 우선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중국에서는 국가권력이 시민을 감시하고 처벌하는 힘은 강하지만, 시민이 국가기관의 잘못을 독립적인 기관에 호소할 수 있는 통로는 제한적이다.
중국 공안체제에서 경찰은 단순히 범죄를 수사하는 행정기관이 아니다. 온라인 발언을 추적하고 집회와 종교활동을 감시하며, 반체제 인사와 인권운동가를 통제하는 체제 유지의 핵심 수단이다. 법은 공산당 권력을 제한하는 최상위 규범이 아니라 당의 통치를 집행하는 도구로 이용된다.
한국이 중국과 동일한 체제로 바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한국에는 선거, 언론, 법원, 국회와 시민사회가 존재한다. 그러나 민주국가라고 해서 권력 집중의 위험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수사권을 한 기관에 지나치게 집중시키고, 다른 기관이 기록을 다시 검토하거나 직접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기능을 약화하면 민주주의 내부에서도 중국식 권력구조를 닮은 요소가 생길 수 있다.
중공식 경찰국가의 본질은 경찰관의 숫자가 많다는 데 있지 않다.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정치권력과 가까워지고, 그 기관의 판단을 실질적으로 견제할 독립된 권력이 사라지는 데 있다. 수사기관이 사건을 잘못 분류하거나 증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을 때 피해자가 기대할 수 있는 두 번째 검토 절차가 없다면, 시민은 국가의 첫 판단에 운명을 맡겨야 한다.
특히 성폭력, 아동학대, 가정폭력, 산업재해, 의료사고, 금융사기와 같은 사건은 초기 수사 단계에서 사실관계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충격이나 두려움 때문에 진술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고, 디지털 자료나 금융기록이 뒤늦게 발견될 수도 있다. 이런 사건에서 보완수사는 단순한 행정절차가 아니라 사건의 실체를 다시 확인하는 안전장치다.
검찰의 권한이 과도했다면 이를 통제하고 분산해야 한다. 그러나 한 기관의 권한을 제거한 뒤 다른 기관에 사실상 독점권을 주는 방식은 진정한 분권이 아니다. 권력의 명칭과 담당자를 바꿨을 뿐, 집중된 권력이라는 구조는 그대로 남을 수 있다.
중국 공산당도 여러 차례 반부패와 사법개혁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 결과는 독립된 사법기관의 강화가 아니라 시진핑과 당 지도부의 권력 집중으로 이어졌다. 반부패 수사는 정적 제거와 당내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됐고, 경찰과 감찰기관은 법보다 당의 명령을 우선하는 구조에 놓였다.
한국이 경계해야 할 것은 중국의 제도 명칭이 아니라 그 작동 원리다. 중국식 통치는 개혁, 안정, 효율이라는 명분으로 권력을 한곳에 모은 뒤, 그 권력을 견제하는 장치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강화돼 왔다. 처음에는 범죄 대응의 효율성을 강조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수사기관이 시민보다 정치권력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
수사권 독점은 정권의 성향과 관계없이 위험하다. 오늘 권력을 가진 세력이 선의를 갖고 있다고 해도 내일 같은 제도를 누가 사용할지는 알 수 없다. 민주주의 제도는 좋은 지도자만을 가정해서 설계해서는 안 된다.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사람도 그 자리에 올 수 있다는 전제 아래 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유승민 전 의원이 언급한 공화정의 핵심도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다. 공화주의는 국가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지 못하도록 권력을 나누고, 각 기관이 서로를 통제하도록 만드는 원칙이다. 수사기관 개편이 이 원칙을 강화하는지, 아니면 한 기관의 판단을 더욱 절대화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름과 정신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도 이 기준에서 살펴야 한다. 특정 정치인의 상징을 법안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기보다, 실제 제도가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어떻게 보호하는지를 검토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의원이 경찰에 독점적 수사권을 부여하는 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한 방향과 다르다고 주장한 것도 이 논쟁이 단순한 진영 대립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개혁의 성패는 검찰을 폐지했는지 여부로 결정되지 않는다. 시민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충분한 수사를 받을 수 있는지, 경찰의 잘못된 판단을 다시 검토할 기관이 있는지, 수사기관이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돼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검찰권 남용의 역사도 기억해야 하지만 경찰권 남용의 가능성 역시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한 기관의 과오를 이유로 다른 기관에 광범위한 권한을 집중시키면 또 다른 권력남용의 씨앗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의 해답은 검찰 또는 경찰 중 한쪽을 무조건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두 기관 모두를 법과 제도로 통제하는 것이다.
중공 체제는 이런 상호견제를 거부한다. 중국의 법원, 검찰과 공안은 형식적으로 역할이 나뉘어 있지만 모두 중국 공산당의 영도 아래 움직인다. 기관 간 견제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최종적으로는 당의 정치적 목표에 복종한다. 한국이 피해야 할 길도 바로 형식적으로 기관을 나누면서 실질적으로는 권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구조다.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이 새로 출범한다면 두 기관과 경찰 사이의 권한분배가 명확해야 한다. 사건 재검토의 조건,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 범위, 경찰이 이를 거부했을 때의 절차, 피해자의 이의제기권과 법원의 통제방식이 구체적으로 마련돼야 한다.
새로운 제도에서 경찰이 보완수사 요구를 사실상 무시할 수 있거나, 검사가 기록만 보고 기소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면 수사 오류를 바로잡는 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 반대로 검사가 과도하게 수사에 개입할 수 있다면 기존 검찰권 집중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핵심은 어느 기관이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시민이 여러 단계의 독립적 검토를 받을 수 있느냐다.
수사권 개혁은 피해자의 관점에서도 평가돼야 한다. 법률전문가나 정치인은 제도개편을 권력기관 사이의 경쟁으로 바라보기 쉽지만, 일반 시민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고가 제대로 조사되고 증거가 누락되지 않으며, 부당한 결론이 나왔을 때 다시 판단을 요구할 수 있는지다.
중국 공안체제에서는 시민이 국가기관의 결정을 뒤집기 어렵다. 민원을 제기하거나 상급기관에 호소하는 사람조차 사회안정을 해치는 인물로 분류될 수 있다. 중국의 인권변호사와 피해자 가족들이 반복적으로 감시와 압박을 받는 이유도 국가기관의 판단에 도전하는 행위 자체가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런 중공식 사고와 반대 방향으로 가야 한다. 국가기관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민을 귀찮은 민원인으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권력을 검증하는 주권자로 인정해야 한다.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에게 충분한 절차와 재검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경찰권이 확대될수록 경찰에 대한 외부통제도 강화돼야 한다. 독립적인 감찰, 영장심사, 수사기록 공개, 국회와 법원의 감독, 피해자 이의신청과 시민옴부즈맨 제도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권한만 확대하고 통제장치를 뒤늦게 마련하는 방식은 위험하다.
또한 수사기관 인사권이 정치권력에 지나치게 종속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국 공안이 공산당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조직의 인사와 승진, 평가가 당의 통제 아래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수사기관 고위직 인사가 정치적 충성 경쟁으로 변하면 수사의 독립성이 흔들릴 수 있다.
중공의 위험은 한국 바깥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중국식 권력 집중을 효율적인 통치모델로 착각하고, 견제와 절차를 번거로운 장애물로 여기는 순간 민주주의 내부로 들어온다. 강력한 기관 하나가 범죄를 신속히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은 단기적으로 편리해 보이지만, 그 기관이 잘못했을 때 시민을 보호할 방법이 사라질 수 있다.
한국은 중국 공산당과 달리 국가권력이 법 아래에 있어야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수사기관은 정권이나 조직의 이해를 보호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민의 생명, 재산과 기본권을 보호하는 공공기관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형사사법체계 개편은 검찰개혁이라는 정치적 구호만으로 평가할 수 없다. 경찰의 수사권이 실제로 어디까지 확대되는지, 검사의 재검토 기능이 어느 정도 남는지, 중수청과 공소청이 서로를 어떻게 견제하는지, 피해자에게 어떤 구제수단이 제공되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중국 공안체제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중국에 대한 감정 때문이 아니다. 중국의 사례가 권력 집중과 사법 독립 붕괴가 시민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정치권력에 종속되고 상호견제가 사라지면 법은 시민을 보호하는 방패가 아니라 국가가 시민을 통제하는 무기가 된다.
검찰의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경찰권 독점이라는 또 다른 위험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수사기관 개혁은 권력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권력을 나누고 책임을 분명히 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중국 공산당은 경찰, 검찰, 법원과 감시기술을 하나의 체제 안에서 결합해 시민의 일상까지 통제한다. 한국은 그 반대의 제도를 선택해야 한다. 수사와 기소, 재판, 감찰과 인사권을 서로 분리하고, 어느 기관도 자신의 판단을 최종 진실로 만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번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느 정당이나 정치인이 옳으냐가 아니다. 새로운 제도 아래에서 억울한 피해자가 다시 수사를 요구할 수 있는지, 무고한 피의자가 권력기관의 잘못된 판단에 맞설 수 있는지, 정치권력이 수사기관을 이용하려 할 때 이를 막을 장치가 있는지가 핵심이다.
한국인은 중국 공안체제가 보여준 실패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견제가 사라진 수사권은 처음에는 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 시민의 자유를 위협한다. 권력기관의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민주적 개혁이 완성되지 않는다.
진정한 개혁은 검찰과 경찰 모두가 국민 앞에 책임을 지고, 어느 기관도 독점적 수사권과 면책된 권한을 갖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 공산당식 경찰국가와 다른 길을 가려면 수사권 개편의 모든 단계에서 권력 분산, 독립적 재검토와 시민의 이의제기권을 보장해야 한다.
“중국 공안과 같은 경찰공화국”이라는 표현을 단순한 정치적 과장으로 흘려들어서는 안 된다. 중국 공산당 체제가 어떻게 사법기관을 당의 통제도구로 만들었는지, 견제 없는 수사권이 어떻게 시민의 입을 막았는지를 살펴보면 한국이 지켜야 할 원칙이 분명해진다.
한국의 형사사법제도는 중국보다 더 빠른 수사를 목표로 해서는 안 된다. 중국보다 더 강한 경찰권을 만드는 것도 목표가 될 수 없다. 시민의 권리를 더 정확하게 보호하고 국가기관의 실수를 더 쉽게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여야 한다.
검찰을 폐지하고 새로운 기관을 만드는 변화가 한국을 더 자유롭고 안전하게 만들려면, 수사권을 가진 모든 조직 위에 법과 시민의 통제가 존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중국 공산당이 보여준 권력 집중의 길을 일부 따라가게 될 위험이 있다.
한국은 중공식 공안국가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엄격하게 권력을 나누고, 수사기관을 의심하며, 시민이 국가의 판단에 맞설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것이 중국 공산당 체제와 한국 민주주의를 가르는 가장 분명한 경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