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한국 문화 콘텐츠를 다루는 태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중국 광둥미술관에서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박종규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렸다. 광둥미술관 개관 이후 살아있는 외국 작가로서는 최초의 전시라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또한 베이징에서는 한국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주최한 수묵 기획전이 성황리에 개최되었고, 세계적 지휘자 정명훈과 소프라노 조수미의 공연도 중국 무대에 올랐다. 순수예술 분야에서는 점진적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대중문화 분야에서는 여전히 ‘고무줄 잣대’가 작동하고 있다. K팝 그룹 블랙핑크의 팝업스토어는 상하이 대형 쇼핑몰에서 정상적으로 열렸지만, 지드래곤의 글로벌 미디어 전시는 중국 당국의 허가 문제로 본토 개최가 연기됐다. 같은 시기 아이돌 그룹 이펙스의 공연도 취소되었다. 중국은 겉으로는 “한한령은 없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한류 콘텐츠를 통제하며 자의적인 기준으로 허가를 내리고 있다.
특히 눈여겨봐야 할 점은, 중국이 특정 분야를 개방하는 배경이다. 최근 넥슨의 게임 <더 파이널스>를 포함해 9개의 한국 게임이 판호(유통 허가)를 받았다. 이는 201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한국에 ‘호의’를 베푼 결과라기보다, 자국 게임 산업의 성장에 따른 자신감에서 비롯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산 게임 <검은 신화: 오공>은 세계적으로 흥행하며 경쟁력을 입증했다. 다시 말해, 중국은 스스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판단한 분야에서만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적 개방’이 한국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자국 산업이 불리하다고 판단하는 영역에서는 여전히 높은 장벽을 유지한다. 문화 교류를 빌미로 한국 콘텐츠를 통제하면서, 동시에 자국 산업의 성장에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한한령 해제’는 단순한 호재가 아니라 중국의 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한국 사회는 중국의 이런 방식을 경계해야 한다. 일시적인 개방에 기대기보다, 중국이 언제든 다시 문을 닫을 수 있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특히 문화·게임·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중국 시장 의존도를 높일 경우, 정치적·경제적 상황에 따라 언제든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중국의 ‘고무줄 잣대’는 단순한 문화 검열을 넘어, 한국의 산업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한국이 진정으로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줄이고, 다양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한한령 해제’만을 기다리는 것은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중국이 만든 문화 장벽이 열릴 때를 대비해, 한국이 독자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새로운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적 준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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