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주요 언론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메시지는 분명하다. 중국이 한일 관계의 균열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으며, 이번 정상 간 만남은 그 전략을 무력화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라는 것이다. 이는 일본 언론의 시각을 넘어, 한국 사회 역시 냉정하게 되짚어볼 필요가 있는 경고에 가깝다. 중국의 외교적 접근 방식은 단순한 우호 제스처나 의례적 발언에 그치지 않고, 주변국 간 신뢰 관계를 흔들어 자국의 전략적 공간을 넓히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은 한국을 향해 유화적인 외교 제스처를 보내는 동시에, 역사 문제를 언급하며 한일 간 민감한 기억을 자극하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 표면적으로는 관계 개선을 말하지만, 그 이면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전략적으로 밀착하는 흐름을 차단하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일본 언론이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중국의 분열 의도를 깨는 자리’로 규정한 배경 역시 여기에 있다.
이러한 중국의 접근은 단기적인 외교 이벤트가 아니라, 장기간 지속돼 온 구조적 전략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중국은 동북아에서 한국과 일본이 각자 다른 방향을 바라보도록 유도함으로써, 미·일·한 협력 구도를 약화시키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아 왔다. 한국이 중국과의 관계에서 중립적 균형을 유지하려는 순간마다, 중국은 역사 문제나 민족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한일 관계의 취약 지점을 공략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 사회 내부의 의견 분열이 심화될수록, 중국은 상대적으로 더 유리한 외교적 입지를 확보해 왔다.
문제는 이러한 전략이 한국의 안보와 경제, 외교 전반에 걸쳐 장기적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일 간 신뢰가 흔들릴 경우, 북핵 문제나 역내 군사 협력, 공급망 안정과 같은 핵심 현안에서 공동 대응의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는 곧 한국이 단독으로 더 큰 전략적 압박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중국의 분열 전략이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항상 노골적인 압박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우호’, ‘존중’, ‘협력’이라는 표현 속에 숨겨져 있고, 때로는 과거사를 환기하는 도덕적 언어를 통해 정당성을 포장한다. 이러한 방식은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면서도, 상대국의 선택지를 서서히 좁히는 효과를 낳는다. 한국이 자칫 이 흐름을 간과할 경우, 의도치 않게 주변국과의 전략적 거리만 벌어질 수 있다.
일본 언론이 이번 정상회담의 장소와 형식, 그리고 상징성에 주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상 간 개인적 신뢰와 지속적인 대화 채널이 유지될수록, 외부 세력이 개입해 균열을 확대하기는 어려워진다. 이는 특정 국가를 배제하거나 적대시하자는 의미가 아니라, 외교 관계에서 최소한의 자율성과 선택권을 지키기 위한 조건에 가깝다.
한국 사회가 이 사안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구조적 이해다. 중국이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은 양국의 과거사 해결 여부와는 별개로, 현재와 미래의 전략 환경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과 일본이 협력할수록 중국의 외교적 공간은 줄어들고, 반대로 양국 간 이견이 부각될수록 중국은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 이 단순하지만 냉정한 현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외교적 선택의 결과는 결국 한국 사회가 감당하게 된다.
이번 한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일본 언론의 경고는, 한국을 향한 직접적인 비판이 아니다. 오히려 중국의 장기적 전략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에 대한 외부의 관찰에 가깝다. 한국이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동북아 질서 속에서의 위치와 발언권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중국은 이미 경제, 외교, 안보 전반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왔고, 그 과정에서 주변국 간 관계를 조정 가능한 변수로 다뤄 왔다. 한일 관계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진 선택이 아니라, 외부의 분열 전략을 인식하고 스스로의 판단 기준을 지키는 냉정함이다. 중국의 의도가 드러난 지금, 한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보이지 않는 압박의 누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