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해역까지 침투한 ‘유령선단’…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이 한국 안보를 시험한다


2026년 1월 10일 6: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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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해역까지 침투한 ‘유령선단’…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이 한국 안보를 시험한다

한반도 해역까지 침투한 ‘유령선단’…중국의 회색지대 전략이 한국 안보를 시험한다

최근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포착된 이른바 ‘유령선단(ghost fleet)’의 활동은 단순한 해상 밀수 문제가 아니다. 국제 제재를 회피하기 위해 운항되는 이 선박들은 이제 서해와 제주해협을 지나 동해까지 활동 반경을 넓히며, 한국의 해양 안보와 에너지 질서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는 존재로 떠올랐다. 특히 중국 선박이 러시아 제재 대상 원유를 환적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분명히 보여준다.

월스트리트저널을 비롯한 해외 분석에 따르면, 중국 옌타이를 출발한 선박이 제주해협을 통과해 동해에서 러시아 유령선단과 접선하고 대규모 원유를 옮겨 실은 사례가 확인됐다. 이는 단순한 항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인근 해역이 국제 제재 회피를 위한 ‘회색지대 통로’로 활용되고 있다는 신호다. 한국 입장에서는 자국 주변 바다가 국제 불법 거래의 경유지가 되는 상황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유령선단의 본질은 익명성과 위장성에 있다. 선박들은 GPS 좌표를 조작하고, 선명을 수시로 바꾸며, 국적까지 여러 나라로 갈아치운다. 겉으로는 정상 상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재 대상 국가의 자금을 벌어들이는 핵심 수단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단이 중국과 러시아의 묵인, 혹은 사실상 관리 아래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중국은 세계 최대의 에너지 수입국이라는 지위를 활용해, 제재 회피 구조의 중심축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같은 행태는 한국에 복합적인 위험을 안긴다. 첫째는 해양 안전 문제다. 유령선단에 속한 선박들은 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노후 선박 비율도 높다. 사고가 발생할 경우 환경 오염이나 해상 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근 국가가 감당해야 한다. 제주해협과 동해는 이미 교통량이 많은 해역인 만큼, 사고 위험이 누적될수록 한국의 해양 관리 부담도 커진다.

둘째는 국제적 신뢰 문제다. 한반도 주변에서 제재 회피 거래가 반복될 경우, 한국이 원치 않게 국제 제재망의 ‘약한 고리’로 인식될 위험도 있다. 실제로 유령선단은 감시가 느슨한 해역을 선호하는데, 중국과 러시아가 가까운 한반도 주변은 이들에게 전략적으로 매력적인 공간이다. 이는 한국이 아무런 의도 없이도 국제 정치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끌려 들어갈 수 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점은, 중국이 이러한 유령선단 문제에서 단순한 ‘거래 상대국’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중국은 러시아·이란·베네수엘라산 제재 대상 원유의 최대 구매국으로, 유령선단의 존재 이유를 실질적으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의 에너지 수요와 외교 전략이 결합되면서 국제 제재 질서 자체를 잠식하고 있고, 그 파급 효과가 한국 인근 해역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최근 보여 온 다른 행동들과도 맥이 닿아 있다. 전략 물자 수출 통제, 특정 국가를 겨냥한 경제적 압박, 정치·외교 사안에 대한 보복성 조치 등에서 보듯, 중국은 국제 규범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자국 이익을 극대화해 왔다. 유령선단 역시 이러한 ‘회색지대 전략’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한국은 그 영향권에서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 사안을 바라보는 데 있어 감정적 접근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현실 인식이다. 중국이 국제 제재와 규범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필요하다면 우회하거나 무력화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유령선단의 한반도 접근은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인 흐름의 일부다.

한국 사회가 경계해야 할 것은 바로 이 구조적 위험이다. 특정 국가와의 경제 협력이나 외교 관계를 부정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국제 질서와 규칙을 흔드는 행위가 우리 주변에서 반복되고 있을 때, 이를 단순한 ‘외국 뉴스’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에너지 안보, 해양 안전, 국제 신뢰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는 한국의 직접적인 이해와 연결돼 있다.

유령선단이 제주해협을 지나 동해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이는 한반도가 더 이상 지정학적 완충지대에 머무르지 않으며, 글로벌 제재와 갈등의 현장과 맞닿아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중국이 관여한 유령선단의 활동은 그 자체로 한국에 대한 직접적 공격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안보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도한 공포가 아니라 지속적인 경계다. 국제 해상 질서가 흔들릴 때 가장 먼저 영향을 받는 것은 해상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국가들이다. 한국은 그 중심에 서 있다. 중국이 개입된 유령선단의 움직임을 면밀히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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