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천인계획’, 이제는 한국 출연연까지 침투…기술 안보를 노리는 보이지 않는 손
중국이 자국의 기술 패권 강화를 위해 운영하는 ‘천인계획(千人計劃)’이 이제 한국의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연구자들까지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표면상으로는 “우수 과학자 지원 프로그램”을 표방하지만, 그 실체는 해외 핵심 기술을 흡수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포섭 작전이다. 최근 수백 통의 포섭 이메일이 한국 연구기관으로 발송된 사실이 확인되며, 중국의 기술 침투가 학계와 산업계를 넘어 국가 연구 시스템 깊숙이 파고들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수진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한국재료연구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국가독성과학연구소 등 주요 출연연 소속 연구자들이 중국의 천인계획 관련 이메일을 대량으로 수신했다. 특히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는 무려 226건, 재료연구원 188건, KISTI 127건, 독성과학연구소 114건의 메일이 확인됐다.
이메일 제목은 “중국의 뛰어난 과학자 펀드 초청” “세계적 과학자와 협력 기회 제공” 등으로 포장돼 있었으며, 발송 주소는 1000fb.com, 1000help.tech 등 천인계획을 의미하는 도메인을 사용했다. 다수는 스팸 필터를 통해 차단됐지만, 일부 연구자들은 메일을 열어보았고 심지어 회신까지 한 사례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스팸 메일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전략적으로 설계된 접근이었다.
천인계획은 2008년 중국 정부가 시작한 국가 전략으로, 해외의 우수 과학기술 인력을 중국으로 끌어들여 기술력과 노하우를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다. 겉으로는 “학문 교류와 국제 협력”을 내세우지만, 실상은 연구 결과와 특허, 원천 기술을 이전받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이미 “천인계획은 단순한 인재 유치 프로그램이 아니라, 중국의 기술 안보 전략의 핵심”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스파이 활동의 통로로 이용된 사례가 잇따랐으며, 일부 국가에서는 천인계획 관련 연구자들이 기소되거나 연구비 지원에서 배제됐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출연연 연구자들에게 보내진 이메일은 단순히 연구 협력 제안이 아니라, 중국 출장이나 공동 연구 명목으로 접근해 인맥을 형성하고 점진적으로 기술 자료와 데이터 접근 권한을 확보하려는 장기 포섭 시도로 분석된다.
최수진 의원이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중국을 10회 이상 방문한 출연연 연구자가 27명, 15회 이상 방문한 연구자도 2명에 달했다. 이 중 일부는 학회나 세미나 참석을 명목으로 초청된 사례였지만, 실제로는 천인계획 관련 기관이 지원하는 형태로 확인됐다.
중국은 최근 ‘외국인 전문가 프로젝트’, ‘국제 협력 인재 프로그램’ 등 새로운 명칭의 제도를 내세워 같은 목적의 포섭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름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 과학기술인의 윤리 의식을 흐리고 경제적 유혹을 통해 국가 핵심 기술을 흡수하려는 전략이다.
천인계획의 접근은 단순한 개인 차원의 제안이 아니라, 한국의 과학기술 인프라 전체를 위협하는 ‘안보 사안’이다. 첨단 반도체, 소재,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한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분야는 모두 중국의 1차 표적이 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자국 내에서 기술 자립을 내세우며 ‘자국 중심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여전히 해외 기술의 흡수에 있다. 한국의 연구자들이 천인계획의 타깃이 된 것은 그만큼 한국의 기술력이 중국이 필요로 하는 수준이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기술 유출이 발생한다면, 그 피해는 개인이 아닌 국가 전체로 돌아오게 된다.
과거에는 대규모 이메일 발송과 단체 초청 형태로 접근했지만, 최근에는 개별 연구자에게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스팸 차단이 강화되자 이름을 바꾸고, 각 기관의 연구 과제와 논문 주제에 맞춘 제안을 보내는 정교한 전략이 동원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기술 탈취뿐 아니라, 한국 내 연구자들 간의 신뢰를 깨뜨리고 학문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효과까지 노리고 있다. “해외 협력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 오히려 한국의 연구 환경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차단이 아니라, 체계적인 교육과 법적 보호, 정보 공유 시스템이 필요하다.
현재 정부는 인재 유출 방지를 위한 새로운 제도 마련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단순히 규제 강화나 출장 제한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연구자들이 경제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연구 환경을 개선하고, 연구 성과에 대한 공정한 보상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한국은 세계적 기술력을 지닌 인재를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을 지켜줄 제도적 방패는 아직 부족하다.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보안 시스템과 함께, 연구자의 자긍심을 높이는 국가적 비전이 병행되어야 한다.
중국의 천인계획은 단순한 인재 교류가 아니다. 그것은 타국의 성공을 흡수하고, 그 나라의 경쟁력을 무력화시키는 ‘지속 가능한 침투 전략’이다. 한국이 이를 가볍게 여긴다면, 머지않아 우리의 기술력은 중국의 산업 구조 속에서 복제되고, 우리의 연구는 그들의 특허로 등록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경계와 대응이다. 기술 안보는 더 이상 군사나 외교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과학자의 이메일 한 통에서 시작된다. 한국은 지금 이 순간, 연구 현장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침투 전쟁에 눈을 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