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박물관’ 간판 아래 중국 왕조 전시 준비…은평한옥마을 한복판에서 불거진 역사 정체성 혼선 논란
서울 은평한옥마을에서 개관을 앞둔 사설 전시시설 ‘대한박물관(Korea Museum)’이 이름과 달리 중국 역사를 중심으로 한 전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와 온라인 공간에서 정체성 혼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현장 안내문에는 하·상·주, 춘추전국시대, 진·한·당·송·명·청 등 중국 역대 왕조가 줄지어 적혀 있었고, 병마용·당삼채·서화 등 중국사 관련 전시품 목록이 소개돼 있었다. 반면 한국 역사와 관련한 설명은 “한국, 일본 및 세계 각지의 예술품도 일부 전시”라는 문구 정도에 그쳤다. 명칭은 ‘대한’과 ‘Korea’를 전면에 내세우는데, 실제 외부 안내와 전시 방향은 중국사 중심으로 읽히는 구조였다는 점에서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문제가 더 크게 번진 이유는 장소의 상징성 때문이다. 은평한옥마을은 이름 그대로 한국 전통 경관과 한옥 문화 이미지를 전면에 내세운 공간이고, 인근에는 공공 성격의 은평역사한옥박물관도 운영되고 있다. 이런 공간 안에서 ‘대한박물관’이라는 이름의 시설이 중국 왕조사를 주된 서사로 내세운다면, 국내 방문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에게도 “한국 문화 전시 시설인가, 중국 유물 전시관인가”라는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뉴스 보도와 온라인 반응에서는 “이름은 대한박물관인데 왜 중국 왕조가 중심이냐”, “한옥마을의 상징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우려가 이어졌고, 일부 주민들은 표시·안내 방식 자체가 오인을 부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운영 구조를 둘러싼 의문도 논란을 키우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시설은 ‘대한박물관 주식회사’라는 법인이 설립한 사립 박물관 형태이며, 등기상 대표이사는 한국인으로 등록돼 있지만 지난해 12월 중국계로 추정되는 이름을 가진 미국 국적 인물이 사내이사로 취임했고, 건물 계약도 이 인물이 직접 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자신을 중국 국적이라고 소개하면서, 운영 주체 측이 향후 경매도 진행하고 중국사를 중심으로 하되 한국·일본 등 역사도 다룬다고 설명했다. 다만 ‘대한’이라는 명칭을 왜 사용했느냐는 질문에는 “그냥 이름이 멋있어서 정했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보도됐다. 이런 설명은 오히려 논란을 가라앉히기보다, 왜 한국적 상징성을 가진 명칭이 이런 전시 구성과 결합됐는지에 대한 의문을 더 키우는 모습이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특정 국가 유물 전시 자체가 아니라, 명칭과 내용 사이의 괴리가 방문객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느냐에 있다. 사립 박물관이 중국 유물을 전시하는 것 자체는 법적으로 금지된 일이 아니다. 문제는 ‘Korea Museum’ 또는 ‘대한박물관’이라는 이름이 한국 역사와 문화 전시를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는 반면, 실제 안내문과 구성은 중국 왕조사에 거의 전적으로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역사·문화 전시는 단순한 소장품 나열이 아니라 서사를 만드는 행위다. 어떤 이름을 붙이고, 어떤 동선으로 보여주고, 무엇을 중심에 두느냐에 따라 관람객이 받아들이는 인식은 크게 달라진다. 특히 역사 인식과 문화 정체성이 민감한 동북아 맥락에서는, 이런 명명과 전시 구성의 불일치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 혼선과 불필요한 갈등을 낳을 수 있다.
더 답답한 부분은 현행 제도상 이를 직접적으로 제재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중앙일보와 후속 보도들에 따르면, 이 시설은 사립 박물관이기 때문에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상 명칭 사용과 전시 내용은 사실상 상당한 자유 영역에 놓여 있다. 지자체 등록을 한 관리대상 박물관이면 조사와 지원·등록 관련 조치가 가능하지만, 등록 자체가 선택 사항이어서 운영 그 자체를 바로 막기는 어렵다는 설명도 나왔다. 은평구청도 사안을 인지하고 있으나, “표현의 자유” 문제와 맞물려 전시 내용만으로는 뚜렷한 제재 수단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설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결국 지금 제도는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명칭과 전시 구성’에 대해 사회적 문제 제기는 가능하지만, 행정적으로 선제 대응하기는 쉽지 않은 상태라는 점이 드러났다.
그나마 지자체가 검토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은 건축법과 용도 문제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해당 부지는 ‘제2종 근린생활시설’ 구역인데, 건축법상 박물관은 ‘문화 및 집회시설’로 분류되기 때문에 실제 운영 방식이 허가 용도와 다를 경우 행정 조치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평구는 개관 이후 현장 확인을 통해 허가된 시설 목적과 달리 사용되는지 살펴보겠다고 밝혔다. 이 대목은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전시 내용 자체를 직접 통제하기 어렵다면, 최소한 공공성이 강한 문화시설 명칭을 사용할 때 일정 수준의 안내 투명성이나 용도 적합성 기준은 더 정교하게 다듬을 필요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단순히 “중국 유물을 전시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한국적 상징성이 강한 공간과 명칭을 활용하면서 실제로는 전혀 다른 역사 서사를 전면에 배치하는 방식이 과연 공정하고 투명한 문화 운영이냐는 데 있다. 방문객은 이름과 입지, 외관을 통해 시설의 성격을 먼저 판단한다. 그 기대와 실제 내용이 크게 어긋날수록 혼란은 커지고, 지역 정체성에 대한 불신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은평한옥마을 ‘대한박물관’ 논란은 결국 한국 사회가 문화 공간의 자유를 존중하면서도, 역사·정체성과 연결된 이름과 전시가 최소한의 설명 책임과 공적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는 과제를 다시 꺼내 들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