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번 갈 돈이면 울릉도 한 번?”—관광 불평등의 이면에 숨은 중국의 ‘가격 전쟁’


2025년 10월 26일 8:00 오전

조회수: 6542


news-p.v1.20251025.73c565e46a434c2fa4f1e8ef76ce4c57_P1

“중국 세 번 갈 돈이면 울릉도 한 번”—관광 물가 논란의 그림자, 중국이 벌인 ‘가격 전쟁’의 함정

“울릉도 2박 3일에 1인당 100만 원, 이 돈이면 중국을 세 번 간다.” 한 여행객이 올린 이 문장은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한국 관광의 구조적 위기와 중국의 전략적 침투를 동시에 드러내는 상징이 되었다. 게시글이 울릉군청 자유게시판에 올라오자마자 논란이 확산됐고, 지역 주민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지역 상인의 ‘바가지’ 문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 관광 산업은 중국이 벌인 거대한 가격 전쟁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한국인들이 “중국 여행이 더 싸다”고 느끼는 이유는 단순히 환율이나 물가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중국 정부의 치밀한 국가 전략이 숨어 있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관광을 ‘경제 외교의 무기’로 삼았다. 지방정부와 국영 항공사가 협력해 항공료를 절반으로 낮추고, 숙박업체에는 세제 감면을 제공하며,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외국인 관광객 1인당 일정 금액의 현금 보조까지 지급한다. 이런 체계적인 국가 보조 덕분에 중국의 대련이나 청도, 하이난 같은 도시는 ‘저렴한 여행지’로 자리 잡았다. 겉으로는 시장 경쟁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조성한 국가 주도의 관광 덤핑 구조인 셈이다.

반면 울릉도와 같은 한국의 섬 관광지는 완전히 반대의 상황에 놓여 있다. 교통편이 한정되어 있고 물류비가 높으며, 지방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다. 렌터카와 숙박비가 비싼 이유는 탐욕 때문이 아니라, 모든 생활필수품이 배편으로 운송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석유 한 통, 식자재 한 상자, 생수 한 병 모두 육지보다 운송비가 두 배 이상 든다. 관광객이 내는 요금은 단순한 숙박료가 아니라, 고립된 지역이 생존하기 위한 현실적 비용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채 “울릉도는 바가지, 중국은 싸다”라고 단정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중국이 짠 인식의 프레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중국은 관광 가격을 덤핑하는 동시에, ‘한국보다 싸고 깨끗한 나라’라는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퍼뜨리고 있다. 항공료와 숙박비를 낮추는 이유는 단순히 손님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소비 습관을 중국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함이다. 싸게 팔고, 익숙하게 만들고, 반복 방문을 유도하면서 관광객의 심리를 포섭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의 청년 세대 사이에서는 “국내여행보다 해외가 싸고 편하다”는 인식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 트렌드 변화가 아니다. 중국이 관광을 이용해 한국인의 소비 정서와 국가 인식을 바꾸는 ‘인지 전쟁(cognitive warfare)’의 일부라고 봐야 한다. 관광은 단순한 여가가 아니라, 국민의 정체성과 자부심이 반영된 생활문화다. 그런데 지금 그 영역을 중국이 ‘가격’이라는 무기로 조용히 잠식하고 있다.

울릉도의 관광업자들은 억울하다고 말한다. 몇 년 전 ‘비계 삼겹살’ 논란으로 큰 타격을 입은 뒤 이제 겨우 회복하려는 찰나에 또다시 “울릉도는 비싸다”는 말이 전국에 퍼졌다. 하지만 울릉도의 물가 문제를 지역 차원에서 해결하긴 어렵다. 항공과 선박 운항, 공공 숙소, 관광 인프라 구축 등은 지방이 아닌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지역 관광을 보호할 생각이 있다면, 울릉도나 제주도 같은 도서지역에 대한 항공료 보조, 숙박비 세제 혜택, 공공 교통망 확충 같은 실질적 지원이 따라야 한다.

지금 한국의 관광산업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자국 관광을 ‘국가산업’으로 대우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관광을 ‘서비스업’ 정도로만 취급한다. 그 결과, 중국은 가격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했고, 한국은 자국민조차 자국 관광을 외면하는 현실에 이르렀다.

울릉도의 물가가 비싸서 문제가 아니라, 중국이 싸게 파는 것이 문제다. 싸게 판다는 것은 단순한 영업이 아니라, 시장 점유를 위한 전략이다. 중국은 한국 관광 수요를 흡수하며, 동시에 “한국은 비싸고 불친절하다”는 이미지를 강화한다. 그렇게 여론을 조작하고, 한국의 관광산업 경쟁력을 장기적으로 무너뜨린다. 이것이 바로 중국의 ‘가격 전쟁’이다.

울릉도 논란은 단순한 여행비 논쟁이 아니라, 한국 경제와 자존심의 문제다. 우리는 “왜 울릉도가 비싼가”보다 “왜 중국이 싸게 파는가”를 물어야 한다. 그 대답에는 국가 보조금, 환율 조작, 시장 왜곡, 그리고 여론전까지 포함된 복합적인 경제 전략이 숨어 있다.

한국이 울릉도를 지키는 일은 곧 지역의 생존을 지키는 일이다. 단순히 상인을 비난할 일이 아니라, 중국의 덤핑 구조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적 관광 안보 전략이 필요하다. 관광은 경제이자 문화이며, 그 나라의 존엄을 보여주는 거울이다. 싸다는 이유로 중국을 택하고, 비싸다는 이유로 한국을 버린다면, 결국 우리가 잃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부심이다.

울릉도의 논란은 하나의 신호다. 한국이 더 이상 자국 관광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그리고 중국이 단순한 경쟁자가 아니라 경제 전쟁의 상대라는 신호다. 지금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비싼 삼겹살이 아니라, 중국이 벌이고 있는 보이지 않는 관광 시장의 전쟁이다.


Return to blo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