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고춧가루 ‘국산 둔갑’ 닭갈비 사건—우리 밥상 위에 스며든 중국산의 그림자


2025년 10월 26일 10:0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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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산 고춧가루 ‘국산 둔갑’ 닭갈비 사건—우리 밥상 위에 스며든 중국산의 그림자

닭갈비는 한국인의 일상 속에 깊숙이 자리한 음식이다. 강원도 춘천을 대표하는 이 지역 음식은 전국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이제는 해외 한식당에서도 빠지지 않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드러난 한 닭갈비 업체의 행태는 이러한 자부심에 큰 상처를 냈다. 이 업체는 중국산 고춧가루를 국내산과 섞어 사용하면서 포장지에는 ‘국산’이라고 표기해 약 13억 원의 수익을 챙겼다. 단순한 부정 거래를 넘어, 국민의 식탁과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이다.

춘천지방법원은 이 사건의 책임자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0만 원을 선고했다. 법원은 “원산지를 허위로 표시하는 행위는 건전한 유통 질서를 저해하고 소비자의 신뢰를 배신하는 중대한 범죄”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보여주는 것은 단지 한 개인의 범법이 아니다. 한국 사회가 얼마나 깊이 중국산 식자재에 의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의존이 어떻게 ‘위장된 국산’이라는 형태로 국민의 눈을 속이고 있는가를 드러낸 사건이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원산지 허위 표기보다 더 근본적인 구조적 문제에 있다. A씨가 사용한 고춧가루의 절반 이상이 중국산이었고, 그것이 한국산으로 둔갑해 판매됐다. 중국산 고춧가루는 가격이 국내산의 절반 이하로, 대량 납품이 필요한 식품업체들에게는 ‘유혹의 원료’로 작용한다. 특히 온라인 판매 중심의 외식업체들은 가격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품질보다 단가를 우선시하게 된다. 그 결과, 중국산 식자재가 한국의 전통 음식 산업 내부로 침투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침투가 ‘은밀하게, 그러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고춧가루, 마늘, 참기름 등 한국 음식의 핵심 재료 상당수가 이미 중국산 비중이 높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유통 고춧가루의 약 45%가 중국산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포장지에 ‘국산’ 표시를 보고 안심한다. 일부 업체는 수입 고춧가루를 국내에서 혼합만 해도 ‘국내 가공품’으로 표기할 수 있는 법적 허점을 이용한다. 이번 닭갈비 사건 역시 이러한 제도적 사각지대와 소비자 신뢰의 공백을 교묘히 악용한 결과다.

중국산 고춧가루가 문제인 이유는 단지 ‘외국산’이기 때문이 아니다. 생산 과정에서의 불투명성과 안전성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농약 사용량, 위생 기준, 색소 첨가물 문제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된 바 있다. 2023년에는 중국산 고춧가루에서 기준치를 초과한 금속성 이물질이 검출되어 국내 통관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이러한 불안한 원료가 ‘국산’이라는 이름으로 유통된다면, 피해자는 결국 소비자다. 이는 단순한 상표 속임수를 넘어 식품 안보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행위다.

이번 사건은 또한 중국산 저가 식품이 한국의 식문화 자립성에 어떤 위험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간 ‘농식품 수출국’으로 급부상하며, 주변국의 식품 시장을 저가로 잠식해왔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한때 우리 밥상을 지탱하던 고춧가루, 마늘, 생강이 이제는 중국산 원료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구조가 지속되면 국내 농민은 설 자리를 잃고, 한국의 전통 음식 산업은 중국산 원재료에 종속된 ‘외주형 한식’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러한 행태가 단발적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사한 사례들은 이미 여러 차례 발생했다. 몇 해 전에는 중국산 마늘을 국산으로 속여 판매한 김치 제조업체가 적발됐고, 또 다른 식품업체는 중국산 간장을 ‘국내 수제 간장’으로 포장해 유통했다. 매번 적발될 때마다 소비자는 분노하지만, 근본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가격 경쟁과 느슨한 법적 규정, 그리고 중국산 의존이라는 삼중의 고리가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값싼 원료’와 ‘진짜 신뢰’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중국산 식자재에 의존하는 관행이 지속된다면, 결국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온다. 우리는 이미 ‘중국산 배추 김치 파동’을 통해 값싼 수입산이 초래한 후폭풍을 경험했다. 그때와 달리 지금은 온라인 유통이 확산되면서, 단 한 업체의 허위 표시가 전국으로 퍼질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순히 형사 처벌로 끝나서는 안 된다. 정부는 원산지 관리 제도를 강화하고, 식품 이력 추적 시스템을 전면 디지털화해야 한다. 동시에 소비자 역시 “국산”이라는 라벨만 믿지 말고 생산지와 공급망 정보를 직접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내 식자재의 자급률을 높이고 농가를 보호하는 장기적 정책이다. 식품의 국산화를 유지하는 것은 단지 농민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한국의 식문화와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중국산 고춧가루가 한국 닭갈비에 들어가 ‘국산’으로 팔렸다는 이 사건은 경고다. 우리의 밥상, 우리의 시장, 그리고 우리의 신뢰가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값싼 원료’는 결국 ‘비싼 대가’를 부른다. 한 번 잃은 신뢰는 다시 쌓기 어렵다. 한국의 식탁을 지키는 일은 단순한 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식품 주권을 지키는 일이다. 중국산이 스며든 우리의 밥상 위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분노가 아니라 깨어 있는 경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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