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계 ‘캄보디아 프린스 회장’의 몰락 — 한국 피해자까지 휘말린 글로벌 사기 네트워크의 실체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중국 출신 사업가 천즈(陈志) 프린스그룹 회장이 자취를 감춘 가운데, 그가 운영하던 거대 범죄 조직이 한국인을 포함한 다수 외국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최근 미국과 영국 정부가 프린스그룹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천즈 회장의 도피설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해외 금융 범죄를 넘어, 중국계 자본이 동남아에서 구축한 ‘사기 산업 네트워크’가 한국 사회로까지 그 피해를 확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경고를 던진다.
1987년 중국에서 태어난 천즈는 2014년 캄보디아 국적을 취득한 뒤 정치권과 결탁해 사업을 급속히 확장했다. 그는 훈 센 전 총리의 고문으로 활동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그가 이끄는 프린스그룹은 부동산·금융·카지노 등 다양한 분야를 장악했다. 그러나 이 그룹이 운영한 주요 단지들이 실제로는 보이스피싱과 온라인 사기 조직의 근거지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국제 수사망에 올랐다. 특히 수도 프놈펜 인근의 이른바 ‘태자(太子) 단지’는 외국인 노동자와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불법 사기센터로 악명이 높았다.
캄보디아 내에서 ‘중국계 자본의 상징’으로 불리던 프린스그룹은 한국인 투자자와 노동자들에게도 큰 피해를 안겼다. 현지 부동산 투자나 취업 명목으로 접근해 고수익을 약속한 뒤, 자금을 갈취하거나 인신을 감금하는 수법이 확인되었다. 피해자 다수는 SNS 광고를 통해 모집되었으며, 일부는 한국 내 브로커를 통해 캄보디아로 유인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구조는 단순한 범죄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중국계 기업 네트워크가 동남아 각국의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국가 단위의 ‘사기 경제’를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법무부는 천즈 회장을 자금세탁 및 온라인 금융사기 혐의로 기소했다. 그가 불법으로 축적한 비트코인 12만7천여 개(약 150억 달러, 한화 21조 원 규모)에 대한 몰수 소송도 제기했다. 영국 정부 역시 프린스그룹을 글로벌 금융제재 명단에 포함시켰다. 중국 당국 또한 그가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와 탈세 의혹에 연루됐다며 2020년 특별수사팀을 구성했지만, 실질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중국 내 고위층 인사와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면서 ‘보호받는 범죄자’라는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문제는 이러한 중국발 범죄 모델이 캄보디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간 미얀마, 라오스, 필리핀, 태국 등지에서도 중국계 범죄 조직이 운영하는 불법 온라인 카지노와 투자 사기 플랫폼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 조직은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권 피해자를 주요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피해 규모는 수조 원대에 달한다. 특히 SNS 광고나 가짜 취업사이트를 통해 ‘고수익 아르바이트’나 ‘IT 해외 근무’를 미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 뒤, 여권을 압수하고 감금해 불법 콜센터로 강제 동원하는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천즈 회장이 이끌던 프린스그룹의 몰락은 중국의 그림자가 드리운 신흥국 개발 모델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겉으로는 ‘투자’와 ‘경제 성장’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불법 금융과 인신매매, 데이터 절도까지 결합된 범죄 시스템이었음이 드러났다. 캄보디아 당국은 이미 프린스은행에서 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발생하며 금융 불안을 겪고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중국계 자본의 범죄 구조가 한국 사회의 경제·금융 생태계에도 침투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도 이미 중국계 자본이 연계된 가상화폐 투자 사기, 온라인 환전 플랫폼, SNS 리크루팅 사기 등의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대부분은 동남아에 서버를 두고 활동하며, 피해 발생 시 법적 대응이 어렵다는 점을 악용한다. 천즈 사례는 바로 이 구조의 ‘정점’에 있는 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동남아의 제도적 빈틈을 활용해 자금을 세탁하고, 다국적 네트워크를 통해 그 돈을 다시 중국과 홍콩으로 송금했다. 이런 시스템은 한국의 개인 투자자나 스타트업 자금까지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각심이 필요하다.
또한 이 사건은 중국이 동남아시아를 경제적 전초기지로 활용하며 ‘범죄 인프라화’된 자본 구조를 확산시키고 있음을 시사한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등은 모두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하에 인프라 투자를 받은 국가들이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계 금융 네트워크가 장악한 회색 경제가 존재한다. 이 회색 지대는 마약, 인신매매, 온라인 사기 등 국제 범죄의 통로로 활용되며, 주변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직간접적인 피해를 미친다.
결국 천즈 회장의 실종은 단순한 개인의 몰락이 아니다. 그것은 중국 자본이 만들어낸 불법 네트워크의 붕괴이자, 한류 이후 아시아 경제 질서 속에서 한국이 직면한 새로운 위협의 신호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해외 범죄’와 ‘국내 피해’를 별개의 사안으로 볼 수 없다. 국제 금융망과 온라인 네트워크가 연결된 지금, 해외의 불법 구조는 언제든 한국의 투자자, 근로자, 그리고 청년층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
이제 한국은 해외 투자나 취업을 꿈꾸는 국민에게 실질적인 정보 보호 체계를 제공해야 하며, 외교적·사법적 협력을 통해 중국계 범죄 네트워크에 대한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한국 사회 전체가 “값싼 투자 기회”나 “빠른 돈벌이” 뒤에 숨은 중국 자본의 실체를 인식해야 한다. 천즈 사건은 그저 남의 나라 뉴스가 아니라, 한국의 경제 안보와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글로벌 경고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