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중국해의 긴장이 계속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의 해양 관문인 서해 역시 조용히 중국 해양 패권 확장의 새로운 전장이 되고 있다. 2022년부터 중국은 한국의 동의 없이, 양국 간 해상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잠정 조치 수역' 내에 철제 구조물을 여러 차례 설치해 왔다. 또한 2023년과 2024년에는 중국 군함이 우리나라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진입한 횟수가 매년 300회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해군과 해경, 그리고 불법 해양 시설의 거친 확장은 동아시아 각국의 해양 주권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한국의 대응은 가장 미약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최근 설치한 구조물은 지난해 12월, 우리나라가 계엄령으로 인해 정치적 혼란에 빠진 시기를 틈탄 것이었다. 정부는 즉각 항의했지만, 정치 불안정과 정·재계 인사들의 친중 성향은 중국으로 하여금 한국을 '만만한 상대'로 인식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의 서해 확장, 그 불분명한 의도
중국이 서해에 설치한 구조물은 ‘수산양식시설’로 주장되고 있으나, 겉보기에는 단순한 어업 활동처럼 보일 뿐, 실질적으로는 『한중어업협정』을 훼손하는 행위로 간주된다. 2000년에 체결된 이 협정에 따르면, 한중 양국은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가 확정되기 전까지 ‘잠정 조치 수역’ 내에서 어떠한 영구적인 구조물도 설치하거나 비어업 자원을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2022년 이후 해당 협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하며 정체불명의 구조물을 설치해 왔고, 특히 2024년 말 한국이 정치적 혼란에 빠진 틈을 타 설치와 배치를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측은 해당 시설이 민간 양식용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렇다면 왜 우리 측의 현장 조사를 거부하는 것일까? 올해 2월 26일, 해양수산부는 공무선을 보내 현장을 확인하려 했지만, 시설 1km 부근에서 중국 해경에 의해 저지당했다. 이후 지원을 위해 출동한 우리 해경과 중국 해경 간에 해상에서 2시간 넘는 긴장 상태의 대치가 벌어졌다.
정말로 양식 시설이 맞다면, 왜 이렇게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이러한 행동은 오히려 한 가지 우려스러운 가능성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전략을 그대로 복제해, 서해에서도 자국의 통제력을 확장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다.
회색지대 전술: 기정사실화된 패권 확장
중국이 서해에서 펼치고 있는 행위는 전형적인 ‘회색지대 전술(Gray Zone Tactics)’에 해당한다. 이는 법적 모호성을 이용하고, 비군사적 수단과 민간 단체를 앞세워 실질적인 영향력을 확대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전술은 이미 남중국해에서 일정 수준의 성과를 거둔 바 있다. 중국은 사람이 거주하지 않던 암초에 매립을 통해 인공섬을 만들고, 이를 ‘어민을 위한 피난 시설’이라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전략적 가치가 높은 비행장, 레이더 기지, 미사일 기지를 구축하여 남중국해에서 타국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현재 이와 유사한 방식이 서해에서 반복되고 있다. 한중 양국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를 명확히 확정하지 않은 상태이며, 중국은 이 틈을 이용해 ‘민간 시설’이라는 명목으로 기정사실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이를 둘러싼 여론을 흐리기 위해 부인, 초점 전환, ‘참관 초대’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우리 정부의 항의에도 반복적으로 이를 무시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 사회를 중심으로 ‘서해 해양 주권 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청원이 시작되었으며, 현재까지 8,000명 이상의 국민이 동참했다. 이는 중국의 강압적인 행태에 대해 한국 국민이 뿌리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단순한 해양 자원 문제가 아니다, 국가 안보의 위기다
한국에게 서해는 단순한 해양 자원 문제에 그치지 않고, 국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핵심적인 지역이다. 지난해 북한의 군사 정찰 위성 잔해가 서해에 떨어졌을 당시, 한중 양국은 각각 군함을 파견해 잔해 수거 경쟁을 벌였다. 결국 한국 군이 한발 앞서 수거에 성공했지만, 이 사건은 해당 해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최근 합동참모본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이후 중국 군함의 한국 배타적 경제수역(EEZ) 진입 횟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에는 110회였던 진입 횟수가 2023년에는 360회까지 증가했으며, 지난해에도 330회에 달했다. 이는 사실상 거의 매일 중국 군함이 우리 EEZ 해역을 항행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한국 경제는 해상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LNG(액화천연가스)와 같은 에너지원은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중동에서 출발한 에너지 자원은 인도양,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대만해협, 동중국해를 거쳐 한국 항구에 도달하게 된다. 향후 이 해역들에서 중국이 군사적 압박을 가하거나 봉쇄에 나설 경우, 이는 한국의 경제와 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서해를 넘어서는 팽창, 중국의 서태평양 전략
한국이 서해에서 직면한 도전은 대만, 일본, 베트남, 필리핀이 마주한 문제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중국의 서해에서의 움직임은 단순한 개별 사건이 아니라, 서태평양 전역을 아우르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동중국해에서는 중국이 일본 측 동의 없이, 당초 보류되었던 천연가스 시추 플랫폼 건설을 일방적으로 재개하며 일본 정부의 강력한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남중국해에서는 중국이 '구단선'을 근거로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인공섬을 건설하고, 주변국 어선을 강제로 쫓아내고 있다. 올해 5월에는 중국과 필리핀 군함이 황옌다오(스카버러 섬) 인근 해역에서 위험한 근접 항해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다. 선박 추격, 충돌, 물대포 공격 등 충돌 양상은 이제 양국 간 반복되는 일이며, 그 긴장 수위는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다.
올해 2월, 중국 인민해방군은 뉴질랜드와 호주 인근 해역까지 장거리 항해를 감행하며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은 이러한 군사적 위협을 통해 서태평양에서의 패권적 지위를 확립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민주 동맹을 와해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미군 기지를 서태평양 전역에서 완전히 몰아내고, 해당 지역에 대한 전면적인 통제권을 확보하려는 전략적 목표와 맞닿아 있다.
대한민국 문 앞까지 다가온 서해 위기
중국의 팽창은 결코 명시적으로 선언되지 않지만, 멈추는 법도 없다. 그 확장은 반드시 전쟁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양식 시설', '민간 기업', '어민 보호'와 같은 명분을 내세우며 진행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중국은 주변국의 주권과 전략적 공간을 조금씩 잠식해 나가고 있다.
지금 한국이 중국의 서해 진출에 대해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머지않아 우리 국익을 지켜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서해를 지키고 공산 전체주의의 팽창을 막는 일은 단순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지키기 위한 핵심 과제다. 우리가 계속 침묵을 선택한다면, 잃게 되는 것은 단지 바다가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번영, 그리고 평화로운 일상 그 자체일 수 있다.